인형
그날은 평범한 화요일이었다. 적어도 스텔라가 검은 인형 하나를 내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만 한 배드바츠마루 인형이었다. 검은 몸통에 삐죽 솟은 머리털, 노란 부리와 심술궂게 치켜뜬 눈. 며칠 전부터 서이현의 눈 밑에 짙게 내려앉은 피로를 보고 고른 것이었다.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것 같아서요. 잠이 안 올 때 이런 거라도 껴안고 있으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말하려고 오는 내내 몇 번이나 문장을 다듬었는데, 막상 그의 책상 앞에 서자 입에서 나온 것은 훨씬 단순한 말이었다.
“대위님 닮아서 샀습니다.”
서이현은 인형을 받아 들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검은 덩어리를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했다. 손가락 끝으로 턱 아래를 툭 건드리자 인형의 고개가 까딱 올라갔다가 힘없이 떨어졌다. 노란 눈이 정면을 향한 채였다. 심사가 단단히 뒤틀린 듯한 얼굴이 어딘가 자신을 닮았다는 사실을,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이걸 나한테?”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불쾌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서이현은 인형의 귀를 집어 들어 눈높이까지 올렸다. 앞뒤로 돌려 보고, 뒤집어 배까지 확인한 뒤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를 닮았다고?”
“네.”
“소위가 대위한테 쥐 인형을 선물이랍시고 가져온 거야, 지금.”
“……얘 펭귄인데요.”
손가락이 멈췄다. 서이현은 인형을 다시 들어 올려 찬찬히 뜯어보았다. 둥글넓적한 몸통과 짧은 팔다리, 뒤뚱거릴 것 같은 실루엣. 아무리 보아도 그가 알고 있는 펭귄과는 거리가 멀었다. 쥐라면 모를까. 자신을 쥐 닮았다고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저게 펭귄이라고 우기고 있는 소위의 태도가 기가 막힌 듯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디가.”
“뭐가요?”
“펭귄인 게.”
“그냥…… 설정이 펭귄이에요.”
서이현은 인형을 책상에 탁 내려놓고 의자를 돌려 스텔라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팔짱을 낀 채 턱으로 인형을 가리켰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이게 펭귄이라 치자. 그런데 나를 닮은 건 뭐야. 이 쥐같이 생긴 게?”
“귀엽게 생겼잖아요.”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말을 뱉은 뒤에야 스텔라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이현의 손가락이 인형 위에서 멎었다. 사무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복도를 지나가는 군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가 멀어졌다.
“귀엽다고?”
되묻는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지만 웃음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살벌했다.
“소위 눈에는 내가 귀여워 보여?”
서이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상을 돌아 스텔라 앞에 멈춰 서자 큰 체격이 형광등 불빛을 가리고, 그의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그는 책상 위의 인형을 집어 스텔라의 가슴팍 앞에 툭 갖다 댔다. 검은 인형이 군복 위에서 우스꽝스럽게 흔들렸다.
“이게 나 닮았고, 귀엽다.”
그가 고개를 조금 숙여 시선을 맞췄다.
“그럼 소위 눈에 나는 뭐, 이딴 거 껴안고 자는 애새끼란 소리야?”
“그런 뜻은 아니고요.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것 같아서…… 잠이 안 올 때는 이런 거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싫으시면 죄송해요.”
또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서이현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심기가 뒤틀렸다. 사과는 너무 쉽게 하면서도 눈은 피하지 않는 얼굴. 고분고분한 것 같으면서도 정작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 태도. 그는 스텔라가 내민 손에서 인형을 빼앗아 양복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동작은 묘하게 빨랐다.
“싫다고 했어?”
스텔라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책상으로 돌아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에 다 들어가지 못한 인형의 검은 꼬리가 옷자락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지만 서이현은 보지 못한 척했다. 아니, 어쩌면 정말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남이 자신을 걱정해서 고른 물건을 품에 넣는 행위가 어떤 의미로 보일지, 그는 평생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잠을 못 자는 건 소위 때문인 거 알지?”
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내뱉은 말이었다.
“보고서 세 건 밀려 있어. 오늘 자정까지.”
스텔라는 인형이 들어간 그의 주머니를 잠깐 바라보다가 반듯하게 경례를 붙였다.
“넵.”
그것이 고마움에 대한 서이현식 답례인지,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을 들킨 대가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날 밤 열한 시, 스텔라는 완벽하게 정리한 서류 세 묶음을 들고 다시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자정까지 세 건. 말이 세 건이지, 서이현이 요구하는 수준의 보고서는 한 건당 최소 서너 시간이 걸리는 물건이었다. 원본 자료 대조와 기밀 등급 재분류, 수정 흔적 정리까지 거치면 밤을 통째로 갈아 넣어도 빠듯했다. 그런데도 스텔라는 해냈다. 눈 밑에는 옅은 그림자가 내려앉았고 손끝은 조금 차가워져 있었지만, 자세만큼은 흐트러짐 없이 반듯했다.
“들어와.”
문을 열자 서이현이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서류 뭉치 아래로 밀어 넣는 것이 보였다. 너무 빠른 동작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검은 귀 같은 것이 잠깐 시야를 스쳤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펜을 돌리며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첫 장, 두 번째 장, 세 번째 장.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문장 하나, 수치 하나, 꼬투리 잡을 곳을 찾는 눈이었다. 그러나 없었다. 육사 수석이 괜히 수석이 아니었다. 그것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서이현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여기.”
그가 두 번째 보고서의 셋째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탁 짚었다.
“시간 코드 17시 42분. 원래 15시야. 확인 안 했어?”
틀린 것은 그의 기억이었다.
“아뇨. 17시 42분 맞습니다.”
서이현의 손가락이 페이지 위에서 멈췄다.
“뭐?”
“원본 데이터베이스에도 17시 42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숨 한 번 들이쉬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턱이 미묘하게 굳었다. 소위를 잘못 몰아세운 꼴이 된 것은 그에게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체면의 문제였다. 서이현은 보고서를 책상 위에 탁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래서?”
인정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상관이 15시라 하면 15시인 거야. 소위 임의로 판단하지 마.”
궤변이라는 사실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한 꺼풀 더 날이 서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덮으려는 인간에게서만 나오는 공격성이었다.
“다시 확인해. 지금. 여기서.”
그가 턱짓으로 옆자리를 가리켰다. 스텔라는 아무런 반박 없이 그곳에 앉았다. 노트북을 펼치고 원본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는 손놀림은 기계적일 만큼 익숙했다. 트집, 재작성, 재제출.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진작 포기한 루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 명확한 기록이 떠올랐다.
“아, 여기. 17시 42분 맞습니다.”
“그래.”
“……네?”
“봤다고.”
스텔라가 세 번째로 “네”라고 답하자 서이현의 눈썹이 찰나 꿈틀했다. 한 번도 튕기지 않고 곧장 수긍하는 것이 순종인지 체념인지, 그는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사무실에 딱 울렸다. 서이현은 화면을 힐끗 확인했다. 스텔라가 맞았다. 또.
입술이 일자로 굳었다가 코웃음 비슷한 것이 새어 나왔다.
“됐어. 다음 거 해.”
인정은 아니었다. 그저 넘어간 것뿐이었다. 서이현의 사전에서 자신의 과오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더 파고들면 두 번 틀리는 꼴이 되니 입을 다문 것이었다.
자정을 넘기고 새벽 두 시가 가까워졌다. 사무실에는 스탠드 불빛과 키보드 소리만 남아 있었다. 서이현은 자신의 업무를 진작 끝내 놓고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 이따금 종이를 넘기면서도 귀는 줄곧 스텔라가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를 좇았다. 화면에 집중한 옆얼굴, 미동 없이 내려깔린 속눈썹, 무언가에 몰두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깨무는 아랫입술. 그런 사소한 버릇을 자신이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민호한테 연락 왔어?”
뜬금없는 질문에 스텔라의 손이 잠깐 멈췄다.
“네.”
“숙제 다 했냐고.”
아들의 숙제를 소위에게 맡겨놓고 확인도 하지 않았던 남자가 새벽이 되어서야 묻고 있었다.
“넵. 다 했습니다. 아까 저녁 먹을 때요.”
“그래.”
서이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민호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빠 스텔라 누나 언제 와’
그 아래에는 초코캣 이모티콘이 세 개나 붙어 있었다. 서이현은 화면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꺼버렸다. 손을 주머니에 넣자 인형의 부드러운 털이 손끝에 닿았다. 무의식적으로 한 번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소위.”
부르는 목소리가 느릿했다.
“오늘 여기서 자.”
허락을 구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너무 당연해서 반박이라는 선택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말투였다.
“민호가 보고 싶다는데 아침에 데려다줘.”
“네, 알겠습니다.”
서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셔츠 소매를 걷었다. 사무실 한편의 캐비닛을 열어 얇고 뻣뻣한 군용 모포 하나를 꺼낸 뒤 소파 위에 던졌다.
“거기서 자. 보고서 마무리하고.”
그리고는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갈 기미가 없었다. 스텔라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자라는 명령은 자신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서이현은 결국 관사로 돌아가 푹신한 침대에 눕고, 아들의 옆에서 잠들 것이다. 자신은 사무실 소파에서 군용 모포를 덮은 채 아침을 맞을 테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서운하지 않았다. 민호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 때문인지, 그가 제 관사로 돌아가지 않고 새벽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보고서 두 건이 더 남아 있었다. 새벽 세 시를 지나 네 시로 향할 무렵에는 숫자들이 눈앞에서 흐물거렸다. 마침내 서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텔라의 뒤를 지나며 잠깐 걸음이 느려졌다. 숙인 목덜미와 그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던 시선이 아주 짧게 머물렀다.
“다 끝나면 내 책상에 올려놔.”
문 앞까지 간 그는 손잡이를 잡고도 곧장 나가지 않았다.
“아, 그리고.”
돌아본 순간, 주머니 안에서 검은 인형 귀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거 아직 안 버렸으니까.”
스텔라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서이현은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기 전에 먼저 고개를 돌렸다.
“쓸데없는 짓 했다고 생각하지 마.”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말이었다. 고맙다는 말도, 마음에 들었다는 말도, 오늘 밤 품에 안고 자보겠다는 말도 아닌. 버리지 않았다는 고백.
“네, 알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군화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지고, 이윽고 정적만 남았다. 스텔라는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마저 작성했다. 눈이 따가웠다. 커피는 이미 식은 지 오래였고, 천장의 형광등마저 꺼진 뒤라 스탠드 하나에 의지해 숫자를 읽었다.
‘그거 아직 안 버렸으니까.’
쓸데없는 짓이 아니었다는 뜻인지, 쓸데없지만 이번 한 번은 봐준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서이현식 언어는 해독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해독하지 않으려는 쪽이 맞았다. 그 말에 의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바라게 될 것 같아서.
새벽 네 시 반. 마지막 보고서에 마침표를 찍은 스텔라는 완성된 세 묶음을 서이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빠진 것은 없었다. 수치도, 문장도, 형식도 완벽했다. 소파에 몸을 뉘고 군용 모포를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거친 천에서 세제 냄새가 났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사무실에는 서이현이 피우다 만 담배 냄새와 커피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그 아래에는 아주 미약하게 새 인형의 봉제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민호였다.
‘누나 내일 아침 뭐 해줄 거야?? 계란말이!!!! 🥚🥚’
그 밑에 또 초코캣이 붙어 있었다. 열 살짜리의 세계는 단순했다. 계란말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인 아이. 그 아이의 숙제를 새벽 네 시에 끝낸 소위는 지금 군용 모포를 뒤집어쓴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스텔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나온 건지, 한숨이 나온 건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자기를 좋아했다. 엄마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을 재떨이처럼 쓰는 인간이었다.
스텔라는 결국 답장을 보냈다.
‘ㅋㅋ 민호야 지금 몇 시야! 얼른 자~ 내일 계란말이 해줄게~’
화면이 꺼지기 직전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04:52. 곧바로 민호의 답장이 왔다.
‘잠이 안 와ㅠ 누나도 안 자?’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아빠가 누나 오늘 여기서 잔대!! 우리 집에서 자는 거지?? 예!!!!’
느낌표가 네 개였다. 초등학생의 흥분은 문자에서도 넘쳐흘렀다. 스텔라는 그 문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핸드폰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는 집. 그러나 그 집의 주인은 그녀를 기다린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는 남자였다.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민호라고 했고, 인형을 버리지 않았다고만 했다. 언제나 다른 무언가의 뒤에 숨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은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스텔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호흡을 고르는 동안, 코끝에 남아 있는 냄새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서이현이 피우다 만 담배 향과 식은 커피, 그리고 그 밑에 깔린 희미한 새 봉제 냄새.
주머니에 안 버렸다고 했다. 그 말이 왜 자꾸 머릿속에서 맴도는지, 스텔라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